백준 온라인 저지(일명 BOJ)가 얼마 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가장 열심히 시간을 투자했던 활동이 바로 BOJ에서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라져버렸다. 운영자가 콕 집어서 서비스 종료 사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최근 몇 년 새 AI봇이 자동으로 웹사이트를 돌면서 제출 어뷰징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이에 따른 서버 트래픽 비용이 과도하게 늘어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추측으로 BOJ 서비스를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쌓아온 수많은 유저들의 랭킹, 제출기록, 문제와 같은 유무형의 자산이 AI로 인해 그 가치가 훼손됨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으셨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요즘 시대에 노력이란 무엇일까. 노력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던 2017년, 불과 9년밖에 지나지 않은 과거를 떠올려보더라도 다들 노력의 본질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높은 점수를 받고 코드도 더 잘 짜던 시대가 있었다. 즉 개인의 역량은 노력을 필요로 했으며, 그 노력은 결코 배신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2026년이 된 지금(정확히 떠올리자면 2024년부터)은 노력이라는 말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노력과 전문성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프롬프트 몇 줄만 입력하면 엄청난 결과물을 단 몇 분 만에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알고리즘을 몰라도 ICPC 문제를 풀게 되었고, 웹개발자가 아니어도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일은 너무나 쉬워졌다. 내가 노력을 투입해서 얻어낸 값비싼 지식들이 이제는 0원에 수렴하는 값싼 지식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렇게 된 세상에서 누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노력을 쏟으려고 할까?
이따금씩 유튜브에서 사람들의 강연, 혹은 신제품 발표 같은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그런 발표들의 공통점은 발표자가 힘들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말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겉보기엔 쉬워보이지만 실제로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발표자의 수많은 노력을 갈아 넣는 결과물일 것이다. 나는 그 안에서 좋은 발표와 스피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를 파헤쳐보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최근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볼 때 가장 먼저 유심히 살펴보는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영상이 AI로 생성된 컨텐츠인지 판별하는 것이다. 요즘 잘 만든 프레젠테이션 영상은 십중팔구 AI로 생성된 컨텐츠이다. 발표자료, 편집, 나레이션이 모두 AI로 제작된 프레젠테이션은 그 퀄리티와 상관 없이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서 의심부터 하게 된다. 오히려 퀄리티는 조악하지만 사람이 직접 제작했다고 확신이 드는 영상이 더 신뢰가 가기도 한다. 퀄리티는 높아졌지만 오히려 신뢰성은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사람들은 이제 결과물만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 정도 결과물은 AI를 활용한다면 누구든지 흉내낼 수 있다는 속임수라는 것을 눈치챘다. 즉 노력과 결과물의 상관관계를 믿지 않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노력의 본질이 훼손되었다고 말해야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보고 평가해야할까?
내 생각에는 진정성을 봐야 한다. 내가 말하는 진정성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고, 어떻게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태도다. 겉으로는 같은 결과물이라도, 그 사람이 던지는 질문과 선택의 이유를 들어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똑같이 ICPC 문제를 풀더라도, 정답 표시에만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 이 풀이가 성립하는지, 조건이 달라져도 성립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웹사이트를 만들더라도, 화면이 작동하는 데서 멈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용자에게 편리한 UI/UX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즉 결과물을 만든 뒤에도 '문제의 본질'을 고민하는 태도에서 그 일에 대한 진정성이 드러난다.
이런 관점에서 나도 어떤 순간에서는 진정성 없이 단순히 결과물만 흉내내려는 사람이 아니었을까를 되돌아보았다. 아직은 노력과 진정성의 과도기인 시대이기 때문에, 여전히 결과물에 더 집착하는 기조는 많이 남아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성을 더 중시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는 직접 코드를 한 줄씩 짜던 시절과 지금처럼 AI에게 원하는 것을 설명하며 코딩하는 시절을 모두 경험하고 있다. 이게 축복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튼 프로그래밍 역사에서 큰 전환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 변화가 10년 뒤에는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하다. 생산성의 혁명으로 기억될까, 아니면 인간 노력의 종말로 기억될까. 나는 전자였으면 좋겠다.